2008년 08월 08일
다크나이트 - 배트맨이 수퍼히어로인 이유
** 영화의 재미를 1/3 이하로 떨구는 강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영화를 보고나니 과연 명불허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점으로 인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다른 이들도 꽤나 많은 모양. 어제 하루 웹써핑을 하면서 다크나이트에 대한 제각각의 감상들을 무척이나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보고난 이들에게 자신의 감상을 토로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란 쉽게 만들어지는게 아니며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다크나이트가 다루는 선과 악의 이야기, 신념과 가치관의 이야기, 그리고 히스 레저의 전율스러운 연기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 조금 의아했던건, 배트맨 개인의 불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 아마도 내가 이 영화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배트맨이 무척이나 불쌍하다는거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존경스러운 어떤 능력을 가졌는데,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에 대해 회의하지 않으며 오로지 이를 관철하는데에만 매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심형래나 이명박을 간디나 김구와 같은 선상에 놓으면 불쾌해 할 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 보지만, 어떤 면에서 이 네 사람들은 분명히 공통된 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점에 대해 한점의 의혹도 없다 ' 는 점이다. 다른 이들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가 믿는 바에 한 점의 의혹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이건 의외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서, 거의 인간을 넘어선 경지가 아닌가한다. 나처럼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별로 자신없어하며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는 인간은 이런 타입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나에겐 반갑게도, 그러나 본인에겐 불행하게도, 배트맨 역시 처음부터 그런 초인적인 신념의 소유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고 행하던 바가 어느순간 스스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결과를 낳기 시작할 때, 배트맨은 흔들린다. 그리고 견고하지 못한 신념을 소유한,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길 강요당하는 사람은 극히 불행할 수 밖에 없다. 혼란스러워진다. 뭔가를 해야하지만 뭘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뭔가 잘못되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 속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억지로 등떠밀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배트맨의 앞길엔 불운한 일들이 그득하다. 깊이 사랑했던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를 더 좋아한다. 그런 여자친구를 되찾고싶어서 배트맨이길 포기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그녀는 비참하게 죽어버린다. 배트맨 스스로가 믿는 바를 자기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실현해 줄 이상적인 모델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적의 손에 타락하여 괴물이 되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든든한 조력자인 폭스는 배트맨이 선을 넘었다며 불편해한다. 배트맨이 지키려는 궁극의 대상 고담시는 이제 배트맨을 적대하기 시작하며, 배트맨은 그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다.
다들 얘기하듯 조커는 배트맨의 마음의 거울이다. 배트맨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자신의 길에 대한 정당성과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조커라는 물화된 캐릭터로 나타나,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앗아간다. 알프레드는 조커가 잃을 것이 없으므로 무서운 상대라 말했고, 이는 역으로 잃을 것이 많은 배트맨이 아주 허약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결국 다크나이트는 배트맨을 비추는 거울인 조커에 의해 배트맨이 아끼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배트맨은 무너지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점이 배트맨이 수퍼히어로인 이유이며, 따라서 이 영화가 여전히 수퍼히어로물인 이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깊이 감동받은 이유는, 배트맨이 물리적인 이유로 수퍼히어로이기보다 초인적인 마음을 가졌으므로 수퍼히어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겪어야만 했던 모든 슬픔과 아픔, 그리고 끝내 완전히 홀로 남은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고담을 지키니까.
# by | 2008/08/08 12:31 | 잡담질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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